본문 바로가기
역사 이야기

계해약조와 기유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by toolist 2025. 2. 28.
반응형

계해약조(癸亥約條)는 조선 세종(世宗) 25년(1443년)에 대마도주(對馬島主)와 체결한 조약으로,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을 공식적으로 규정한 최초의 조약이다.

  • 일본의 무역 허용 → 연간 50척의 무역선 입항 가능
  • 무역 장소 제한 → 부산포(釜山浦), 제포(薺浦), 염포(鹽浦) 3곳
  • 대마도주는 조선의 신하로 인정

이 조약을 통해 조선과 일본 간의 교역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계해약조는 조선과 일본 간의 공식적인 무역 질서를 정립한 조약이었다.

계해약조와 기유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계해약조와 기유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기유약조(1609년)

기유약조(己酉約條)는 임진왜란(1592~1598) 이후 조선과 일본이 외교·무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1609년 에도 막부와 체결한 조약이다.

  • 무역 규모 축소 → 연간 20척의 일본 무역선 입항 허용
  • 무역 장소 단일화 → 부산포(釜山浦)에서만 허용
  • 대마도주가 무역을 독점적으로 관리

이 조약을 통해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면서도 철저한 통제를 유지했다.

기유약조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무역을 제한적으로 재개한 조약이었다.

계해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무역 활성화와 대마도의 역할

계해약조 체결 이후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은 점차 확대되었다.

  • 대마도를 통한 공식 무역 활성화
  • 조선에서 일본으로 쌀, 인삼, 면포(綿布) 수출
  • 일본에서 조선으로 은(銀), 유황, 구리, 말 수입

이 시기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 무역지로 성장했다.

대마도는 조선-일본 무역에서 중요한 중개 역할을 수행했다.

무역 질서 확립과 제한 조치

조선은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면서도 엄격한 통제 정책을 유지했다.

  • 무역선을 50척으로 제한하여 조선 내 일본인 활동 통제
  • 무역 장소를 3곳으로 제한하여 일본인의 내륙 진출 차단
  • 왜구(倭寇) 활동 감시 강화

이러한 조치로 인해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을 유지하면서도 안보를 고려한 무역 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조선은 무역 규모를 제한하며 일본의 영향력을 통제했다.

기유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무역 규모의 축소

기유약조 체결 이후 조선은 일본과의 무역을 크게 제한하였다.

  • 연간 무역선 20척으로 대폭 감소
  • 부산포를 유일한 무역 거점으로 지정
  • 일본인 거류지(倭館) 설치 → 일본인의 활동 범위 제한

이는 임진왜란의 피해를 경험한 조선이 일본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관리하려는 조치였다.

기유약조 이후 조선은 일본과의 무역 규모를 크게 축소하였다.

대마도의 중재와 무역 독점

기유약조 이후 대마도주는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 대마도주가 조선과 일본 간 교역을 조정
  • 일본 막부의 무역 참여 제한
  • 조선과 대마도 간의 정치적 관계 강화

이로 인해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경제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유약조 이후 대마도주는 조선과 일본 간 무역을 독점적으로 관리했다.

조선의 통제 강화

조선은 일본과의 교역을 유지하되 일본인의 내륙 진출을 철저히 통제했다.

  • 부산포 내 왜관(倭館) 설치 → 일본인의 거주 지역 제한
  • 무역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
  • 일본 상인의 자유로운 활동 금지

이러한 조치는 조선이 일본과의 교역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안정을 고려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은 무역을 허용하면서도 일본인의 활동을 철저히 제한했다.

계해약조와 기유약조 이후 조선-일본 무역 관계 비교

구분 계해약조(1443년) 기유약조(1609년)
무역 규모 연간 50척 허용 연간 20척으로 축소
무역 장소 부산포, 제포, 염포 부산포 단일화
대마도의 역할 중개 무역 수행 무역 독점

결론

계해약조 이후 조선과 일본의 무역은 활성화되었으나, 기유약조 이후에는 조선이 일본과의 무역을 크게 제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조선이 일본과의 관계를 더욱 신중하게 조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계해약조는 무역을 확대하는 조약이었고, 기유약조는 무역을 제한하는 조약이었다.

반응형